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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사우디 간호사

사우디 간호사, 그만둘까?

by 깡호사 2021. 12. 22.

사우디 살이 100일 차, 그만둘까?

사우디에 도착하고 오늘로 딱 100일이 되었습니다. 자가격리와 병원 OT를 들은 기간을 빼고 간호사로서 병동에서 일을 한 건 2달 정도밖에 안되었지만, 많이 바쁘기도 하고 생각도 많아져서 블로그를 올릴 힘도 없었어요. 아주 짧은 기간이지만 사우디에 와서 생각보다 실망하게 되는 점들이 생기면서 '이게 맞는 길일까?' 생각이 많았어요. 떠다니는 생각을 키우기보다는 글로 써서 정리를 해보고 싶어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미 결론을 내렸지만 블로그에도 사우디 간호사를 그만둘까, 계속 일할까 혼자 고민했던 내용들을 기록해두고 싶었어요. 경력, 급여/복지, 근무환경, 교육, 자기만족을 기준으로  장점과 단점을 비교해봤습니다. 이곳에 함께온 선생님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병동마다 상황이 아주 다른데요, 이 글은 우리 병동 기준, 제 기준으로 쓴 글입니다*


(경력) 한국에서 사우디 경력 인정이 될까?

사우디 병원에서 경력을 몇 년 채우고 한국병원에 취업을 하게 된다면, 사우디 경력의 나를 좋아해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경력직으로 병원에 들어가는 것도 '전 병원에서 이렇게 일했니?', '0년 차라더니..' 라며 기죽이는 한국 간호사 세계에서 '해외경력 있다더니.. 이런 것도 모르네..' 하는 식의 이야기를 들을게 상상이 가니, 차라리 빨리 그만두고 다시 한국에서 내 경력을 쌓자는 고민도 들더라고요. 사우디 병원은 1년 단위로 계약하는 계약직 간호사라 정규직을 선호하는 한국에서 어떻게 경력을 쳐줄지는 의문입니다.

 

(급여/복지) 12시간 근무인데 급여 이거밖에 안돼? 퇴직금은?? 

12시간 근무 자체는 아직까지 할만한데, 3데이, 3 나이트는 정말 힘들더라고요. 숙소도 병원에서 25분 정도 거리에 있어 준비시간+출퇴근 시간+근무시간 하면 14시간은 근무하는 것 같은 느낌... 집에 와서 밥 먹고 씻고 나서 바로 잠들어도 7시간밖에 못 자는 것 같아요. '왜 하루는 24시간인가'라는 쓸데없는 생각도 많이 하는 요즘입니다. 병동에서 근무하는 저는 한국과 크게 월급 차이가 나지 않아요, 그런데 12시간 근무하면서 비슷한 월급을 받으니 괜히 억울하고 또 이 병원에는 퇴직금이 거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 억울해졌어요. 그래도 매년 재계약을 하면 주는 보너스가 있어서 그걸 퇴직금으로 모아두면 되겠지만... 한국에서는 일을 그만두면 목돈의 퇴직금을 받았는데 그걸 못 받는다고 하니 월급이 많이 아쉬웠습니다(조삼모사..?). 힘든 해외 생활하는데 돈도 생각만큼 많이 받지 못하니 내가 여기 왜 있는 거지..? 한국에서 코로나 파견근무를 하면 한 달 600-900만 원 받는다고 하던데, 그게 훨씬 나은 것 아닌가, 하는 자괴감도 들었어요.

 

+) 코사에서 교육을 들었을 때, 마치 모든 사람들이 정부 해외정착지원금을 받을 것 처럼 홍보를 하셨는데, 정작 이곳에 와서 정착지원금을 신청하니 반려당했습니다. 저 말고도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반려받았더라고요. 미혼의 경우 부모님의 건강보험금이 36만 원(?)이 넘으면 반려가 되는데, 한국에 있을 때도 이런 설명을 듣긴 했으나 부모님이 건강보험금을 얼마나 내는지도 몰랐고 그 기준이 어느 정도인지 체감이 안됐는데, 이곳에서 많은 선생님들 이야기를 들으니 부모님이 맞벌이하시면 98%는 못 받는다고 보면 되는 정도였습니다(굉장히 낮은 기준이었음..). 

(근무환경) 환자는 적게보는데, 절차가 복잡해서 바쁨

한국에서 환자 12-32명을 봤는데, 이곳에서는 최대 3명만 봐서 너무 좋았습니다. 그런데 환자를 2-3명만 봐도 이곳이 바쁜 이유는 쓸데없는(?) 절차가 많아서라고 생각해요. 약을 줄 때마다 기계로 간호사 명찰 바코드+환자 팔찌 바코드+약 바코드를 찍어서 투약 기록을 해야 하는데요, 이 기계가 낡아서 잘 스캔도 안되는 데다가 버퍼링도 심해서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투약오류를 막으려는 시스템이지만 이렇게 한다고 해서 투약오류가 안 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 구멍이 꽤 있는 작업이에요. 또 채혈이라도 하게 되면 pre-sampling 바코드+간호사 명찰 바코드+환자 팔찌 바코드+샘플 뽑는 기계 바코드+기계에서 새로 뽑힌 바코드 무려 5번이나 바코드를 찍어야 한다는 사실..! (+기계 버퍼링+스캔 잘 안됨) 이 정도면 채혈보다 바코드 스캔하는 게 더 오래 걸릴 정도입니다. 

또 이곳에는 수많은 보고 시스템이 있어서 저는 일한지 2달 만에 보고서를 2번이나 적었습니다.. infiltration가 생기면(2.5cm 이상의 swelling) 보고서를 써야 하고, IV line insertion 4번 이상 try 하면 보고서를 써야 해요. 이런 복잡한 절차 때문에 바쁜 것 같아요. 또 환자 시트를 다 갈아줘야 하고, 기저귀도 갈아줘야 하고, 그런 자잘한 일들이 많습니다.

 

(교육) aseptic 도 제대로 안지킨다고?!

나름 세계적으로 큰 병원인데, 다른 간호사가 넬라톤 하는 걸 보고 있는데 aseptic하지 않게 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그리고 한국에서는 아무리 라인잡기 힘든 환자라도 최대 7일까지 IV라인 유지하고, 매일 듀티마다 드레싱 뜯어서 확인하고 소독도 했었는데, 이곳에서는 라인 잡고 거의 방치.. 드레싱 열어서 확인해보지도 않고 2주가 넘게 라인을 유지 중인 환자도 있습니다. 폭탄을 서로 전달하는 게임을 하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정맥염이라도 생기면 그때 근무하던 간호사만 똥을 밟게 되는..

 

(자기만족) 너무 답답 + 외로움

분명 병원에서 좋은 숙소도 제공해주고(컴파운드 안에 헬스장, 수영장, 자쿠지, 테니스장, 탁구장 있음, 마트도 있음) 쇼핑 트립이라고해서 유명 몰들을 투어하는 버스도 스케쥴대로 운영되고 있지만, 이 곳은 정말 답답한 곳이었습니다. 쇼핑트립 버스는 8:30am 아니면 7:30pm에 있고 돌아오는 버스도 3시간 뒤에 있어서, 아침 버스는 너무 이른 시간이라 타기 힘들고, 저녁 버스는 돌아오는 시간이 너무 늦어서 힘들더라고요. 택시를 타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면 컴파운드가 리야드의 변두리에 있어서 택시비가 많이 나와요. 혼자 걸어 다니기에는 퍽치기당했다, 성폭행/성희롱당했다, 납치당했다는 흉흉한 소문도 들리고요. 혼자 카페 가서 책 읽는 그런 여유는 누리지 못해요. 또 근무가 끝나고 집에서 한 잔 마시던 맥주가 너무 그립더라고요. 

한국에서 가족과 친구들은 연말 파티, 삼겹살에 소주 마시고 행복한 일상을 살아가는데, 나만 이 사막 한가운데서 혼자 외롭게 살고 있다는 느낌에 눈물만 몇 번을 흘렸는지... 외로움을 잘 타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외로움을 많이 탔구나... 여기 와서 슬슬 자신에 대해 알아가게 되었어요.

 

그만둘까? 계속 다닐까?

생각보다 힘든 사우디 라이프, 그만둘까? 계속 다닐까? 하는 고민은 한국을 가는 그 순간까지도 계속될 것 같아요. 마음을 다잡고 다음번엔 계속 다닐까? 편으로 긍정적인 마음으로 글을 써보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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